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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들

나에게, 문제가 있다면, 꼭 얘기해줘.

by BLUESSY 2024. 10. 1.

 

#1.

앞선 글에서 이 말을 하는 여자를 잘 안 믿는다고 말했다. 특별히 여자라 말한 이유는 일반적으로 남자가 이 말을 잘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말을 하는 남자가 제대로 된 객관화가 이루어져있는 경우에는 후술할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다만 여성성이 강한 남자가 이 말을 한다면 그 말 또한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되며, 동시에 그 남자로부터 멀어져야 한다. 이 경우는 오히려 저런 말을 하는 여자보다 더 해악이 되는 존재다.

 

어쨌거나, 내 블로그를 보는 지인 중 하나가 이 부분에 대해서 질문을 했기에, 이 참에 좀 더 여기에 대해 글을 써보고자 카페에 앉았다. 참고로 이 생각은 내가 지난 10년에 걸쳐 만들어진 것이므로, 누군가 하나의 케이스로만 형성된 게 아니라는 점을 미리 말해둔다. 나는 이 말을 하는 사람들을 지겹게도 많이 만났고, 그래서 그 사람으로부터 이 얘길 들었을 때 참 슬펐다. 농담으로 '음 아마도 그렇게 되면 나는 말 없이 물러설거야' 라고 말했었는데, 이미 그런 일이 벌어지고 내가 그런 식으로 멀어질 것이란 걸 나는 직감하고 있었다.

 

#2.

아마도, 일반적으로 여성이 직전 연애에서 받았던 상처, 혹은 거기서 왔던 트라우마가 어느정도 투영이 되어 그런 결과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만, 본질적으로는 방어기제에서 오는 문제이다.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에게 그 트리거가 다시 발동되는 일은 흔하다. 다만 얼마나 스스로 극복을 했는가의 문제인지라,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만이 자신의 그림자를 온전히 수용한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이를 부정 (denial) 과 투사 (projection) 이라고 칭한다. 이를 사용하여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을 회피하려는 시도로도 볼 수 있으며, 융의 시각에서 흔히 말하는 '개인화 과정'을 올바르게 완성하지 못한 상태라 한다. 자신의 그림자, 즉 인정하고 싶지 않은 측면을 받아들이고 통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조금 더 직설적으로 얘기하자면, '나에게 문제가 있다면 얘기해줘' 는, 표면적으로는 자신의 약점이나 부정적인 면, 이것이 객관적이든, 혹은 1:1 관계에서의 주관적인 부분이든 간에 어쨌거나 '문제' 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모습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 말을 듣는 것에 대해서 회피성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비판받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며, 방어적 반응이 이미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즉, 열려 있다는 인지를 주기 위해 하는 행동이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닫혀 있음을 명백하게 나타내는 발언이다. 따라서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고치고 싶어하는 듯한 표면과는 다르게도, 그 부족함을 인정받고 싶지 않은 양가적 심리 상태가 반영된다. 아마도 이 말을 하는 사람이 정확하게 이러한 의중을 가진 상태로 의도적으로 나에게 이런 말을 하지는 않았을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사람의 무의식에는 이러한 방어기제의 메커니즘이 반드시 존재한다.

 

 

 

#3.

앞선 내용은 융과 프로이트의 이론을 빌린 것이고,

라캉의 이론으로 좀 더 들어가면, 상상계와 상징계 사이의 갈등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말을 한 사람은, 보통 이 발언을 통해 관계적으로 이상적인 모습을 유지하기를 원하는 경향이 높다. 하지만 이 말 속에는 상징계에서의 규칙과 요구, 즉 현실적 관계에서 피할 수 없는 갈등과 타인의 비판을 받아들이는데에 대한 두려움이 내포되어 있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좀 더 들어가면, 이 말을 한 사람은 (화자라 칭하겠다) 상대가 (청자라 칭하겠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비판, 즉 상징계의 규칙을 부과해주길 바라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거부하는 양가적인 욕망을 반영한다.

 

화자는 청자가 스스로에게 완벽한 이미지를 유지해주길 바라지만, 청자가 현실적으로 화자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을 실제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그리고 실제로 지적받았을 때 이러한 반응이 나온다면, 이는 상징계의 질서가 화자의 상상계에 균열을 일으킨 경우이다. 화자는 청자가 실제로는 문제를 지적하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겉으로는 열린 태도를 유지하려 한다. 그러면 화자의 불안과 방어기제가 실제와 충돌하면서 비판을 받아들이는 데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이로 인해 관계가 멀어진다.

 

 

#4.

다만, 이 행동을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다. 단지 내가 상대의 행동을 '받아들이고 수용해줄 수 있는가' 의 리밋에 대한 문제이다.

어쨌거나 이는 화자가 내면 갈등을 해결하려는 무의식적 신호이기도 하며, 그 갈등을 해결하기에는 아직 준비가 덜 된 상태임을 나타내는, 다소 충돌이 있는 모순적 상태임을 뜻한다. 그러나 어쨌건 미성숙한 개인화 과정 단계에 있다 하더라도 스스로의 단점을 돌아보려는 시도 자체까지 부정적으로 평가하기에는 너무 야박하다. 

사람은 누구나 다 자기 방어기제를 가지고 있다. 다만 그것이 현실과 오버랩이 되었을 때에, 어떻게 반응하고, 실제로 자기가 내뱉은 말을 충실하게 지키려 노력할 때에 극복이 가능하다. 양가적인 감정이라는 건 아무래도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많이 발현되고, 실제로 이 이야기를 나도 아주 어른스럽게 핸들링하지는 못했다고 본다. 

 

 

#5.

유일하게, 내 인생에 이런 형태로 다가와놓고 한번 크게 사단을 냈음에도 내 곁에 끝까지 남아 나와의 관계를 회복한 사람이 있다. https://phdblues.tistory.com/56 에 등장하는 동료인데, 그녀와 알고 지낸지 어느덧 7년이다. 중간에 크게 틀어질 뻔 했던 시점에서, 이 사람이 뼛속부터 뜯어고치겠다는 각오로 내 옆에 남아 스스로의 미성숙함을 잘 극복해냈다. 덕분에 개인적으로 멈춰있던 정신적 성장이, 나와의 트러블 이후 엄청나게 성숙해졌다. 물론 앞으로 갈 길이 아직도 머신 양반이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은 제법 흐뭇한 일이다.



#6.

어쨌거나, 지금이라도.

나에게 이 말을 했던 그대들이 조금은 더 나은 삶을 살고 있길 기도한다. 실제 겉으로 보이는 삶 말고, 당신의 무의식과 내면 깊은곳에 자리한 트라우마와 상처. 내가 여유가 더 있었다면 분명히 돌아봐줄 수 있었음에도, 지난 10년간의 나는 나의 생존을 위해 늘 날카로운 칼처럼 살아 있었기에, 당신들의 아픔을 돌보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의도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어쨌거나 결과론적 표리부동함에 대해서 다소의 피로가 느껴졌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 때에는 나도 다소의 실망과 분노, 그리고 슬픔이 있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후회되는 게 없잖아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중에 그런 게 있지 않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골로새서 3:13

 

하나님 형상대로 살겠다 항상 다짐하지만, 아무래도 아직도 멀었다. 좀 더 너그럽고, 포용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말이다. 내가 이 세상에 품은 사명을 잘 수행하려면, 지금보다는 더 큰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다만 문제는, '나의 정신건강' 과 얼마나 많이 바꿀 수 있느냐인 듯 싶다. 그 사이에서의 줄타기가 잘 되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렇다. 이젠 다 지나간 일 아닌가. 여유가 돌아오고 있다. 물론 내 인생 4막이 곧 시작되니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만, 내 삶의 컨트롤을 조금씩 더 잡아가는 입장에서. 그대들을 잃은 것은 솔직하게 말하자면 큰 아픔이다.

 

그들이 좀 더 행복하길 빌며, 그림자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날이 오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