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각들

친구와 인간관계에 대한 단상

by BLUESSY 2022. 5. 16.

Being too nice will hurt you at some point.

 

이 말의 힘을 믿는 편이다. 그러나 동시에 잘 소화하지 못할 때가 많다. 인간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을 디폴트로 가지고 살고는 있으나, 내가 흥미를 느끼거나 좋아하게 되는 (비단 이성적으로만을 뜻하지 않는) 경우는 아무래도 조금 더 내 곁을 내어주려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차라리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쳐 있으면 생각을 덜 해도 되는데, 내 의식의 깊은 곳으로부터 성악설을 믿으면서도 내가 내 이너서클에 넣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을.. 아마 알면서도 부정하려는 무의식적 기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나는 간단하게, 네거티브 사인에 민감한 인간이다.

 

그러나 한 가지 깨달은 바가 있어 적어본다. 때론 세상을 조금 다르게 볼 필요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라고 하면, 훗날 이 글을 보았을 때 무슨 이야기인지 기억해낼 수 있으리라.

 

친구가 하나, 아니 정확히는 둘 있다. 한 명은 Chinese American 이고, 또 한 명은 미국에서 석박을 하고 현재 포닥중인 중국인이다. 현재 물리적으로는 나에게 가장 가까운 친구들이고, 정신적으로도 친구의 범주 내에서는 가장 가까운 이너서클에 존재한다. 이들의 존재 자체가 나에게 박사과정 말년차에 굉장히 큰 힘이 되어주었고, 내가 간만에 '행복하게 현생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는 느낌을 다시금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크게 감사한다.

 

가급적이면 내 바운더리를 크게 침범하지 않는 범주 내에서, 그들의 마음을 많이 헤아려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다행히 초기에 손절률이 가장 높은 단계를 무사히 지나, 내 서클 안에 무사히 안착했기 때문에. 그렇지만 그것이 벽을 온전히 허물 수 있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친구는, 그리고 연인 또한 가까워질수록 더더욱이 지켜야 하는 선이 있다.

 

그런 맥락에서, 역시나 being too nice 는 문제가 된다. 상대방이 나를 과하게 편하게 느끼게 되면, 원래는 상식선에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동도 '이해해주겠지' 라는 무의식/의식 하에 행하게 된다. 이 점은 결과적으로는 인간관계를 부식시키고, 되려 남보다 못한 존재가 된다. 종국에 가서는 반드시 배드엔딩을 맞이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들. 이는 더 걷잡을 수 없게 되기 전에 반드시 한 번 손을 쓰는 것이 필요하다.

 

한자를 배웠고, 지금도 제법 활용할 줄 아는 편이다. 한자 자체를 좋아하기도 했고, 글쟁이로서 한자어를 많이 아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알고 있다. 이것저것 중국 문화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편이다. 물론 이것은 비단 중국뿐 아니라 일본, 미국 등 내가 관심을 가진 문화권과 나라에 대해 적용된다. 이 친구들은 그것에 대해 놀라워했고 (나야말로 한자를 잘 모르는 대학원 유학생들이 있다는게 놀라울 따름이긴 하다만.. 우리 죄다 공부하고 산 사람들 아닌가?) 우리는 기꺼이 중국 문화나 역사, 그리고 문학 등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그런데, 내가 이 이야기를 그들에게 해 주었던 것은, 어찌 보면 너희와 내가 공유하고자 하는 바가 있음을 알려주고자 함이고, 더 가까워지길 바란다는 시그널이지, 내가 그들이 중국어로 내 앞에서 떠들고 있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거나 흥미로워한다는 뜻은 아니다. 더불어, 내가 아는 그 이상으로 굳이 더 알고 싶은 관심이 있는 것 또한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런 행동을 하기 시작했고, 한 번은 넘어가주기로 했으나, 같은 일이 반복되었기에 따로 한 명씩 대면하여 이 이야기를 꺼냈다.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이보다는 '좋은 게 좋은 거지' 라며 넘어가는게 더 쉽기 때문에, 사람들이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아도 모른 체 놔두다가 곪아 썩게 되는 일이 많다. 이는 본인에게도 상대에게도 둘 다 좋은 일이 아니고, 그렇게 사라져가는 관계로부터 상처를 받게 되기 때문에, 사실 당장의 불편함을 조금 더 감내하여 롱텀을 보는 것이 현명하다. 눈앞의 불편함을 피하려고 겁쟁이가 되면 안 된다. 불편함은 마주하고 걷어내야 나를 지킬 수 있다. 내 감정을 불편하게 하는 것들, 서너번 다시 생각해봐도 내 심기를 거슬리는 일은 반드시 point out 해야 한다. 어차피 말하지 않으면 상대는 내 감정이 어떤지 알 수 조차 없기에.

 

이들이 전하고자 하는 사과가 도대체 정확히 무엇인지, 어떤 톤인지 알 수 없으나,

이 둘은 진심으로 내게 사과했고, 다시는 이 일을 반복하지 않았다. 불가피하게 중국어를 사용해야 될 때는 반드시 내 양해를 구한다.

 

누군가는 이 글을 보고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되느냐, 친구사이에/연인사이에 불편하게 그렇게 해야 하느냐고 반문하리라. 그러나 내 답은 똑같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편함과 무례함은 정말 한 끗 차이이기 때문에, 그리고 인간은 그 한 끗을 구분하는 능력을 가진 개체수가 적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피드백이 필요한, 즉 높은 지능이 필요한 영역이므로) 장기적으로 관계를 잘 가꿔나가려면 편함을 빙자해서 내가 편하려 하면 안 된다. 스스로의 바운더리를 잘 그어놓고, 거길 넘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 사람간에 필요한 예의이자, 관계의 기초다.

 

그리고 그것을 뛰어넘으려면, 톤을 바꾸고. 말하는 모양을 예쁘게 다듬을 줄도 알아야 한다.

같은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반응은 극과 극으로 나누어지는 까닭이다.

'생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선택한 길 - 탁재훈  (0) 2022.07.11
30대 세 번째의 큰 목표  (0) 2022.05.23
2021 결산 및 2022 킥오프  (0) 2022.01.04
단상 08/12/2021  (0) 2021.08.13
고독과 뜻  (0) 2021.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