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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 Arte Sefla

Focus and diversity (집중과 다양함에 대하여)

by BLUESSY 2024. 4. 18.

 

Lighty Salty Espresso - On the way to the Kirkland / Photo by KH Kim, Panasonic Lumix G95

 

#1.

벌써 2주가 또 지나고, 엘이 또 다시 캘리로 돌아가는 날이다. 지난달과는 다르게 이번달은 정말 딱 칼같이 2주만 있다 간다. 한동안 candidacy exam으로 바빠서 이 유쾌한 할배 친구들을 못 봤는데, 어쨌거나 잘 패스했으니 한가해지기도 했고, 또 한편으론 오랜만에 그에게 듣는 음악이야기가 그리워서 그를 공항에 데려다주기로 했다.

 

그는 요즘 부쩍, 프로페셔널리즘에 대해 자주 얘기한다.

 

 

#2.

스티븐 램슨이라는, 워싱턴주에서 제법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있다. 이제 나이가 많이 들었고, 노환으로 시력을 잃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대단한 피아니스트인데, 그가 한 7년 전쯤에 거대한 프로젝트를 기획했었다. 트럼펫, 현악기, 관악기, 일렉기타, 하모니카를 위시하여 9명의 뮤지션이 15개의 악기를 연주하고, 어떤 장편 서사시 비슷한 음악을 여러 악장으로 구성해서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보려고 했다 (고 나는 이해했다).

 

나도 믹서를 만지고 레코딩을 제법 많이 하는 사람인데, 엘은 확실히 나보다 한 수 위다. 기타도, 음악에 대한 이해도도, 그리고 기계적 능력조차도 말이다. 그는 그 프로젝트의 발대 당시에 가장 먼저 스티븐에게 고용되었고, 기타리스트이기 이전에 사운드 엔지니어의 포지션으로 더 큰 책임을 맡았다고 한다. 나중에 이 '사운드 엔지니어' 라는 개념에 대해 따로 이야기해보겠지만, 내가 이 중년의 기타리스트에게서 마이클 잭슨의 사운드 엔지니어링의 유사성을 보았다는 건, 나로서도 제법 큰 충격이었다.

 

 

#3.

어쨌건, 다시 스티븐으로 돌아와서.

그 6개월간의 노력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와 스티븐은 이 실패의 이유를 프로페셔널리즘에 대한 멤버들간의 이해부족으로 생각한다.

 

이를테면, 어떤 악기를 30년 넘게 연주한 누군가는, 모든 것을 블루스로 해석하고 연주했다 - 그리고 이것은 사실이다. 나는 이 '누군가' 와 종종 함께 연주하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에겐 모든것이 블루그래스 (컨트리 뮤직의 뿌리가 된 음악풍) 이고, 스윙이고. 뭐 이런 식.

그러나 그들이 하려던 곡 자체는 클래식 피아노곡으로 분류되는 곡이었다.

 

"뮤지션이 어떤 한 분야를 집요하게 파는 건 좋은 일이다"

 

동의한다. 어떤 부분에 있어 그 파고든 영역의 전문가--특히 예술성에 있어서--가 된다는 것은 확실히 좋은 일이다. 

 

"But boy,"

잠시 뜸을 들이다 그가 말을 잇는다.

"If you define yourself as a professional, and if you're getting paid, you should have many styles. You should not stick to your one single style obssessively. You should play along with the people, and should fit into the way how lead wants to play"

뒤이어,

"I'm not saying "it is better to". It is the requirement for professional".

그렇다. 세션 뮤지션으로든 오케스트라나 밴드 멤버로든 돈을 벌려면 (프로듀서가 아니라면) 고용주의 입장에 부합하는 뮤지션이 되어야 한다.

 

사족이지만, 이 이야기를 '상업성에 영혼을 팔아 예술의 무결성, 음악의 순수성을 해친다' 는 Gae같은 소리를 하는 인간을, 나는 진심으로 경멸한다. 애당초 상업적 음악이 없었다면 너넨 이미 다 멸종했을 것들이다. 상업성과 고용주의 입장이라는 건 음악의 또 다른 측면이자, 인간 사회의 integrity를 유지하는 아주 기본적인 질서이다.

 

 

#4.

또 다른 문제는 소통방식이었다고 한다.

그간 축제에서, 거리에서, 그리고 카페에서, 바 무대에서 함께 연주할때는 몰랐으나,

클래식곡을 도마 위에 올리게 되니 충격적이게도 악보를 못 보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모두 ear training으로만 듣고 연주하는 형태였는데, 세션이나 밴드 세팅에서는 그게 가능하다. 덧붙여 나도 어지간해서는 악보를 안 보는 인간으로서 그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 악보를 안 보면 오히려 자유로워지고, 더 즐기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럼에도, 우리가 프로라고 불리는 경지로 들어서려면 나의 고집을 끝까지 관철하지 않는 법도 알아야 한다.

 

하나를 파는 것은 분명히 가치있고 고귀한 일이다. 그 속에 깊이 감춰진 의미와, 때론 새로운 가치를 발견해내기도 한다. 그러나, 나와 같은 종류의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다. 어떤 프로젝트를 위해 많은 사람이 모였고, 거기에 뜻과 물질이 결부되면 우리는 하기 싫고 말고를 가릴 수 없다. 그것이 프로가 일을 대하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

 

즉, 어찌되었건 같은 레벨, 같은 이해, 그리고 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야지 일이 되는 것.

 

 

#5.

대학생 때의 일이 떠올랐다. 그에게 짧게나마 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21살의 나는 밴드가 하고 싶었다. 다행히 평균을 아득히 뛰어넘는 재능을 타고난 덕에, 밴드에 필요한 모든 악기를 독학으로 한 1주일만에 다 익혔다. 드럼, 키보드, 기타, 베이스 모두 다.

그리고 그걸 친구들에게 가르치는 식으로 밴드를 시작했다.

 

그들도 의욕에 넘쳐서 해보자! 는 결의로 시작했는데 문제는 그 밴드 시간을 제외하곤 이들이 집에 악기가 있는것도 아니고, 그 당시엔 온라인 강의 같은 것도 없어서 집에 가면 연습할 방법이 없다. 게다가 나는 한 명이고, 가르쳐야 될 사람은 다섯명이니. 이게 될 리가 없었다. 그냥 내가 욕심이 과했던 것이다. 그저 '밴드' 라 불리우는 게 멋있어 보여서. 그게 다였다.

 

 

#6.

시간이 좀 흘러, 대학을 졸업할 때 즈음 '규' 선생이라는 친구와 따로 듀엣을 해봤다. 규선생은 내가 정말 편견 없이 좋아하는 고등학교 친구인데, 내게 있어 쿨가이의 표본 같은 그는, 어디선지 모르지만 괴상한 기타를 배워와가지곤 제법 잘 치는 것이었다. 우린 종종 네이트온에서 별 시덥잖은 이야기를 밤새 떠들곤 했는데, 갑자기 밴드 하고 싶다는 얘기가 그의 입에서 나왔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예전에 다니던 종각 어딘가의 스튜디오를 예약했다.

 

다음날, 우리는 오후 두 시에 만났다. 그는 당시 아주대를 다니고 있었어서, 제법 먼 거리를 달려왔다.

 

합주해본 결과,  이 친구와는 전혀 무리가 없었다.

일단 내가 아는 보컬 중 세 손가락에 꼽는 친구이기도 하고, 나와 약간 결은 다르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음악에 오래간 미쳐있었던 친구라서, 우리는 그 날 처음으로 악기와 음악을 맞춰봤지만 내가 그간 합주해본 그 누구보다도 더 잘 맞았다.

 

비슷한 재능, 같은 실력, 같은 이해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7.

대학생 때의 이 사건은 내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당시 스튜디오 예약은 어쨌거나 내 몫이었고 (왜냐면 내가 돈을 많이 벌던 때이므로), 내가 누군가를 위해서 일해서 번 돈을 그들을 위해 쓰는 중에, 이게 옳은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 돈을 쓴다면, 그 돈이 아까워지는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된 게 이 때 부터였고, 이것은 향후 내가 여러 부업과 사업을 하는 근간의 마인드셋이 되는데,

 

"고객의 돈이 아깝지 않도록, 고용주의 돈이 아깝지 않도록"이 내 모든 비지니스의 모토가 된다.

 

 

#8.

최근에 기타를 연주해달라는 의뢰를 받은 적이 있는데, 내가 평소에 연주하는 곡과는 사뭇 다른 무드의 넘버들이었다. 칠 줄이야 당연히 알지만- 그리고 몰라도 듣고 칠 수 있지만, 아쉽지만 거절했다.

이를테면 이렇다.

누군가 내게 지브리 메들리를 의뢰한다면 나는 그 날 하루종일, 별 힘든 느낌 없이 몇 시간이고 연달아 기타를 칠 것이다. 쉬지 않고 쳐도 나는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같은 곡을 서로 다른 느낌으로 재생산할 수 있다.

이는 내가 조 히사이시라는 사람에 대해 오래간 공부한 덕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내 기타 인생의 근간이 그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누군가 내게 탱고 넘버들을 부탁하면 마찬가지로 그리할 수 있다. 올드팝 넘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아예 새로운 넘버를 의뢰받으면, 나는 그 곡을 해석한 적이 없기 때문에 제대로 된 연주--변주 및 강약, 템포, 싱코페이션 등 음악적 언어를 녹여넣을 수가 없다. 그것은 짧은 시간 안에 되는 게 아니다. 단순히 세션 뮤지션으로만 들어간다면 가능할지 몰라도, 독주를 하려면 그건 아예 다른 이야기가 된다.

 

여기서 엘의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다.

프로페셔널리즘.

 

나는 아직 멀었구나.

 

 

#9.

지난 주, 누군가와 저녁을 먹다가.

어쩌다 기타 이야기가 나왔다.

 

그녀가 내게 물었다.

 

"당신은 이미 다른 사람과도 조인해서 합주를 할 수도 있고, 이미 즐길 수 있는 충분한 수준이 되었는데 레슨을 또 받는다는건 더 잘 하고 싶다는 말인가요?"

 

더 잘 하고 더 즐겁게 하고 싶어서- 라는 답을 했으나, 거기에 한 가지를 더 갈음해서 기억해보고자 여기에 쓴다.

내게 있어, 음악은 내가 세상을 이해하는 또 다른 하나의 언어이자 창구이다. 음악은 언어를 초월하고 시간을 초월해서 존재해 왔으며, 앞으로도 존재해 나갈 것이다. 내가 녹음을 하고, 편곡을 하고, 합주를 하고, 다시 그것들을 기록하여 남기면, 수십년 수백년이 지난 시간에도 나의 언어를 듣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유명해진다는 이야기가 아님). 그리고 그들이 이해하는 그 미래의 '내가 연주한 곡' 은 어떨 것인지. 나의 시대와는 어떻게 다를 것인지. 나 같은 인간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 사람에게 닿는, 미래로에 쓰는 편지 같은 것.

 

내가 죽어 없어지더라도 내 음악은 남는다. 그게 내 자작곡이든 편곡이든 뭐가 됐든 내 손에서 탄생한 내 음악이 된다.

즉, '나' 라는 사람이 시간을 뛰어넘어 역사에 살아가기 위한 장치이다. 나라는 사람의 영향력을 꾸준히 후대에 남기기 위한 것.

 

이를 두고 혹자는 '자의식 과잉' 이라고 한다.

그리고 뭐, 아마 맞겠지. 인정한다.

 

 

#10.

프로 의식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하다. 사회적 존재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연인으로, 가족으로, 친구로. 무언가를 잘 하려는 마음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이 더 나은 것인가' 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한 분야에 포커스를 빡빡하게 몰아서 파고드는 것이 지금까지의 '기본기'를 다지는 과정이었다. 기타도, 그림도, 강의도, 글쓰기도, 사진도. 각 분야당 나는 그 '한 방' 을 만들기 위해 부던히 노력했다. 물론, 타고난 재능 덕에 남들보단 굉장히 쉬웠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겠다.

 

그렇다면 단순히 남들보다 쉽게 무언가를 성취한 것에서 끝날 것인가.

쉽게 성취했으면 시간을 아낀 게 된다. 그걸로 다른 능력을 구매하거나, 있는 능력을 더 업그레이드 시키는거다.

 

 

#11.

다소 오만하게 들리겠으나,

능력자, 즉 소위 말하는 '천재'의 꿈은 절대로 작아선 안 된다.

 

내가 이런 능력들을 하나하나 꾸준히, 그리고 다양하게 길러나가는 것은. 내가 가진 능력들이 늘어날수록, 그리고 그것들을 어떻게 섞어내느냐에 따라서, 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고, 종국에는 세상의 비밀을 여는 열쇠로 인도하는 길이라 굳게 믿기 때문이다.

 

편집증적 망상에 걸린 정신병자의 말로 치부해도 좋다. 그럼에도 나는 흔들림 없이 굳게 믿는다- 인간은 자고로 비전과 목적을 가지고 살아야 하며, 그 목적을 향해 온갖 방법을 다 사용하여 이루는 과정에서 알게 되는 진리들이 있다. 그리고 그 진리들이 여럿 갖춰졌을 때, 반드시 다른 문이 열린다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

Matthew 7: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