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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 Arte Sefla

완성의 희열 - The art of completion

by BLUESSY 2024. 1. 30.

 

엘이 커클랜드에 온지 2주가 지나서, 다시 2주동안 캘리에 돌아가야 된다. 공항에 돌아가는 날이 대부분 주중이라, 그가 라이드가 필요할 것 같아 연락했었는데, 나는 여기서 참 이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엘은 2년전에 뇌졸중이 왔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가끔 그가 기타를 치는 것을 보면, 이 사람이 뇌졸중 전에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인간이었겠다 싶을 때가 종종 있다.

 

그를 픽업할 때의 첫 마디는,

 

"Man, it seems like you really like to record yourself playing, right?"

 

이 이야기가 나왔던 건, 그 전날 카페에 아무도 오지 않았는데, 내가 그룹챗에 '상관없다 나 혼자라도 솔로잉 녹음할거니까 다들 걱정말라' 고 던졌던 탓이었다. 엘이 아마도 그 메시지를 굉장히 흥미롭게 본 모양이었다. 

 

공항으로 가면서, 그는 내게 계속 질문했고, 그 중 하나가 정말 기억에 남는데, 즉 '기타리스트로서 지금 직면한 가장 중요한 고민이 뭐냐' 였다. 내게는 고질병이 하나 있는데, 핸드스피드가 정말 기타를 이렇게 오래 친 사람치고 너무 느리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누군가는 '속주' 는 사실상 피지컬을 타고나는게 있어야 한다고 한다. 즉, 태생적으로 속주가 불가능한 사람이 있댄다. 이거 근데 일부 동의하는게, 나는 피아노도 속주가 안 된다. 손이 섬세하고 민감한 편인 대신, 피지컬이 좀 많이 딸리는 편이다. 생각해보니 이건 게임을 할 때도 그랬고, 손의 dexterity가 필요한 경우에는 정말 뭐가 잘 안 되는 편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그는 전혀 의외의 답을 주었다.

 

"Man, don't worry about the speed. It's of course makes your play better if you have it, but not very necessarily. It's more important to 'complete' the song, rather than drop off in somewhere you play."

 

그가 왜 이 이야기를 했는지, 그 순간 시간이 멈춘 기분이었다. 고맙고 미안하고 또 슬픈 마음이 동시에 차올라서 뭔가 형용하기 어려운 순간이었다. 이 초로의 예술가는 내게, 당신의 '뇌졸중' 으로부터 얻은 영감을 나누어 준 것이다.

 

이틀 전이었을 것이다. 그는 나와 한참 기타를 치다가 보여줄 것이 있다며 나를 데리고 근처의 펍- Melody Lynne에 갔다. 거기서 그는 나를 사람들에게 소개했고, 그 중에서도 특히 그의 예전 뮤직 파트너였던 여자를 소개해주었다. 제니퍼는 오래간 엘과 함께 호흡을 맞췄던, 그리고 실제로 오래간 투어를 함께 했던 사람이었다. 엘은 'this guy can play as much as I can' 이라고 소개했고, 제니퍼는 믿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때 나는 테니스 치고 바로 갔을 때라 완전 그지꼴을 하고 있던 데다가, 그 펍은 나를 제외하곤 모두가 백인이었다. 어디서 애송이 동양인이 와서 기타 잘 친다고 소개하니 아무래도 못미더웠을 것이다. 

 

거기서 엘은 나에게 본인의 과거를 나누어주었다.

 

유튜브에서 찾아본 그녀와 엘의 호흡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엄청난 기교가 필요한 곡들이 아니었지만, 뇌졸중 전의 엘은 확실히 엄청난 오라를 풍기고 있었다. 

 

"I used to be really good before stroke"

 

충분히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그가 예전의 핸드스피드를 낼 수 없음에도 여전히 우리 밴드의 리더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모든 곡을 다 완성해본 경험이 있는 덕이 첫번째일 것이다. 아니, 아마 그의 인성일수도 있겠고.

 

사람은 살아가며 여러 시련을 겪는다. 누군가는 거기에 굴복하고, 또 누군가는 극복하며, 또 누군가는 굴복했음에도 다시 이기기 위해 한 걸음을 내딛는다. 중요한 건, '언젠가는 내가 이긴다' 는 확신이고, 그 확신을 더 굳건히 하기 위해 내가 나를 믿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내게 영감을 주었다. 곧 다시 그가 커클랜드에 돌아온다. 어서 그를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