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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들

당신이 한국인이라면

by BLUESSY 2024. 3. 26.

 

 

#1.

내가 교통사고가 나서 다니게 되었던 카이로프랙터에게 들은 이야기다.

 

그는 처음에는 한국에 대해 전혀 모르고, 그냥 중국의 속국 혹은 위성도시이며, 중국이 자비를 베풀어 나라로 존재하는 것을 허가받았다고 알고 있었다. 자기와 친한 중국인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이렇게 이야기를 했고, 그래서 본인이 속한 커뮤니티는 대부분이 그렇게 알고 있다고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이게 도대체 뭔가 싶었다. 뭐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이후에, 생각보다 중국이 젊은 청년, 중장년층을 이용해 이러한 활동을 미국에서 굉장히 조직적으로 치밀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장, 내가 가까이 지내던 중국인 지인 몇을 오랜 시간에 걸쳐 그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회유하여 (3년이 걸렸다), 그들을 통해 확인한 내용이기도 하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공산화를 생각보다 치밀하게 준비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뉴욕이나 시카고 등 미국의 주요 대도시에, 중국 정부가 비밀감시기구를 설치했다가 적발되었다는게 무슨 뜻인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나도 이것을 미국에 나와서 알게 되었는데, 뒤늦게나마 경각심을 가지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중이다.

 

이것은 국가의 미래가 걸린 장기적인 문제이며, 나의 소명 중 하나이다. 좌우 정치색 따위의 문제가 아닌, 여러분이 태어난 국가이자 여러분의 가족이 속한 큰 단위의 집단의 존망에 대한 문제인 것이다.

 

 

#2.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애당초부터 공평하게 설계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성공이 더 가치있는 것이고, 무언가를 극복하는 정신이 위대한 것이다. 삶이 왜 이렇게 불행하냐고 불평한다면, 원래 삶은 그런 것이다. 그렇기에 나의 삶을 가치있고 즐겁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의미있는 것.

 

가지지 못한 것을 불평할 시간에 할 수 있는 걸 하는 것이다. 공평이니 평등이니 하는 것들을 따지려면 위만 따지고 있을 게 아니라 아래도 따져야지. 당신이 가진 것 조차도 이미 평등에 위배되는 것들이다. 극단적인 예시지만, 사지가 절단된 장애인들을 생각하면 당신도 팔다리를 잘라야겠지.

 

묻겠다. 그게 평등인가?

 

평등이라는 건 애당초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개념이다. 욕구가 있는 이상 절대로 평등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공산국가인 중국조차도 미국으로 대학교 대학원 유학을 나온다. 평등하려면 그것조차도 없어야 하는데, 여전히 중국에도 대학 서열이 있고, 시험이 있고, 직업의 귀천이 존재한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이 두 개념은 애당초 존재해서는 안 되는, 모순된 개념이다. 이상론만 펼치는 탁상공론에 불과하며, 실제로 그것을 이행하는 인간들조차도 평등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부정한다. 그들의 자식을 미국에 보내고, 엘리트 교육을 받게 한다.

 

한국의 좌파도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 평등을 외치지만, 실제로 그들의 자녀들이 어디서 공부하고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보라. 당신의 부모님이 부자였으면 좋겠다, 당신이 부자였으면 좋겠다. 당신의 자녀가 좋은 교육을 받길 원한다. 이런 생각에 결사 반대하는가? 평등하려면 이 생각들이 당신에게 부정적으로, 나쁜 가치로 다가와야 한다.

 

내 장담한다. 그런 사람 하나도 없다. 그리고 그건 당연한거다. 인간은 애당초 남들보다 우월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자, 인간의 자격이다. 

 

 

#3.

하여, 당신이 위를 보며 당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그들이 가진 것을 당신도 가지고 싶다는 평등을 요구하는 건, 오히려 불평등에 가깝다. 그가 손에 지금 쥔 것을 가지기 위해 그가, 혹은 그의 선조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 그 노력을 당신도 똑같이 해서 가져야 평등한 것이지. 그냥 노력하긴 싫고 결과를 가지고 싶으니 허울좋은 평등을 갖다붙이는 것이다. 반대로 당신과 하등 관계없는 사람들이 당신과 함께 일한다고 하자. 그리고 그들은 당신이 관리한다. 그 명목으로 당신은 그들의 연봉의 20배를 받는다.

 

그런데 어느날 그들이 말한다. 이것은 평등하지 않다고. 우리 모두 같은 업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임금격차가 나는 것은 불공평하니 당신의 연봉을 나눠서 그들과 동일하게 받아야 한다고.

 

다시 묻는다. 이게 평등인가?

 

이건 저렇고 저건 이렇고 예외 갖다붙이고 예시 갖다붙일 시간에 노력을 해라. 현대 사회에서 논의되는 평등의 본질은 결국 내가 앞서 든 예시와 같다. 

 

노력하고 이뤄낸 만큼 보상받는게 정당한 거다.

뛰어넘을 수 없는 허들 따위는 없다. 당신의 유전자에도 무언가 뛰어난 게 하나쯤 있을 것이다.

 

해도 안된다고? 노력으로 안 되는 게 있다고?

 

문제는 뛰어난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과 그들의 강점으로 붙어서 이기려고 하니 답이 없는거다. 5대째 의사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와, 5대째 막노동꾼의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가 같은 노력을 한다고 같은 결과가 나오겠는가. 애당초에 가지고 태어난 두뇌와 지능에서 큰 차이가 난다. 거기에 성장 환경까지, 아마 그들이 유리한 필드에서 싸우면, 즉 의사가 되고 싶어 한다면,  막노동꾼의 자식은 한 50배는 불리한 지점에서 시작할거다.

 

근데 이게 잘못된 게 아니다. 왜 의사가 되고 싶어하는가? 그 욕망에 본질이 있다. 남들보다 더 나아지고 싶다는 게 본능 아닌가.

 

이건 사회구조의 문제 같은 게 아니다. 유전자의 문제이자 생물학적 문제다. 지능은 중요하다. 노력가지고 안된다면 당신은 당신이 싸우면 안 되는 전장에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해보라.

분명 엄청나게 공부량이 많은데도 성적은 중위권 이상을 못 올라가는 친구들이 있었을 것이다. 

1. 유전자 + 지능

2. 유년기의 두뇌 발달

 

이 차이이다.

 

그들이 가진 뛰어난 유전자는 그들의 선조들이 노력을 들여 그들에게 선물해 준 것인데, 그걸 어쩌겠나. 없는 건 없는거다. 나의 핏줄, 나의 후대를 위해서 내가 조금이라도 더 발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신이 막노동꾼이라면, 적어도 당신 자식이 막노동꾼으로 살지 않게 하기 위해서, 당신은 일반적인 막노동꾼과는 차별화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남들과는 다른 방법, 즉 이기는 방법을 찾을 때까지 계속 굴러야 한다. 

 

인간의 두뇌는 유일하게 거꾸로 나이를 먹는 게 가능한 기관이다.

 

현실을 살자. 백날 평등 타령해봤자 당신의 자식만, 혹은 당신의 인생만 더 끝없는 나락으로 빠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