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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들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간다면 (feat. 올드팝의 위대함)

by BLUESSY 2024. 4. 18.

 

Time Paradox, Photo by KH Kim, Canon 6D + Sigma 24-70 EX DG OSM

 

 

#1. 

롭의 고교 시절 친구인 빌이 최근에 세상을 떴다. 나이가 많지는 않지만, 뇌종양으로 오랜 시간 고통받다가 주님의 부름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는 그의 영혼과, 그리고 남겨진 가족들을 위해 함께 기도했다.

 

 

#2.

새로운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살면서, '죽음에 가까운 사람들' 과 깊은 관계를 맺어본 적은 가족 외엔 없었다. 최근에 내가 가까이 지내는 밴드 할배들은 그런 의미에서 정말로 내게 많은 영감을 준다. 첫째로는 음악적 영감이고, 둘째로는 그들이 나와 다른 시간대를 살아왔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앞선 글에서 얘기했던, 음악의 존재성에 대한 개념이 이와 비슷하다. 시간이 흘러도 음악이 존재한다는 것. 

이것이 이들과 가까워지게 된 정말 중요한 포인트이다.

그들은 젊은 시절, 그들이 아름다웠던 그 시절에 들었던 곡들을 사랑하며, 또 연주하여 다른 시대의 사람들에게 들려준다.

 

그런 그들의 눈에- 나이든 백인 할배들의 눈에- 어디서 이상한 젊은 동양인놈이 나타나서 다짜고짜 기타를 들고올테니 끼워달라고 하고, 그들이 치는 모든 곡을 대부분 즉석에서 다 연주해내는 것은 확실히 이상했을, 아니 신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좀 더 흘러 그들이 나를 맘에 들어하게 된 건, 내가 뽑아드는 곡들 때문이다. 베이스를 치는 할배-짐- 이 내게 다음 곡 선정을 콜을 넣었을 때, 나는 말없이 자메이카 페어웰의 도입부를 연주하기 시작했고. 그는 세 마디를 듣고는 눈이 휘둥그래져서 "Is it Jamaica Farewell???" 이라며 내게 물었다.

 

곡 합주가 끝나고, 그가 다시 내게 되물었다.

 

"I NEVER thought you know this song. You lived in a different era, time, and different country."

 

엘은 언젠가 내가 닐 세다카의 곡 (Oh Carol, Breaking up is hard to do) 을 뽑아들었을 때 경악했다.

그들에게 있어, 나이차이가 꽤 나는 동양인이 연주하는, 그들의 젊은 날의 음악은 제법 신선하다고 한다.

나는 다가오는 여름에, 자메이카 페어웰의 녹음에 진짜 각잡고 참여한다.

 

개인적으로 이것이 올드팝의 위대함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을 뛰어넘어, 세대를 이어주는 매개체이자, 감정과 기억을 공유할 수 있는 언어로서의 예술.

 

 

#3.

우리가 함께 식사를 하거나 커피를 마시면, 그들이 이야기하는 주제의 대부분은 내가 잘 모르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시대, 그들이 살아온 날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무척이나 즐겁다.

 

 

#4.

우리의 합주를 늘 4개의 카메라로 녹화한다. 그들이 나와 함께 살아갔던,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이 시간을 기록하여 다른 시공간에 존재케 하고 싶은 탓이다. 영상 속의 모두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게 웃는다. 누군가 한 소절을 치면, 하나둘씩 따라들어와 이내 미소짓고 1주제를 함께 달려나가는 모습은, 왜 음악이 인류 최고의 예술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준다.

 

엘은 그렇게까지 영상에 열중하는 내가 신기한 모양이다. 아마도 편집들이 끝나고 나면 내가 왜 이러는지, 그도 금방 이해할 것이다. 나는 내가 가진 능력을 통해서, 그들이 하루라도 더 젊은 날의 모습을, 그리고 행복한 그들의 모습을 예쁘게 담아 그들에게 선물하고 싶다.

 

 

 

#5.

롭은 빌의 소천을 두고 '우정의 끝' 이라 칭한다.

 

개인적으로 이 사람의 언어가 참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정갈하고, 따뜻하고, 그러면서도 신사다운 그의 표현법은 내게 생각보다 많은 영향을 주었다. 참 여러 모로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이다.

 

"그를 잃은 것은 슬프나, 이미 그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좋은 기억들을 많이 얻었으니 괜찮다. 그는 내 기억 속에서 영원히, 나도 이 세상을 떠나 그를 만나는 날 까지 나와 함께 살아간다."

 

우정의 끝이라는 표현은 아직 단 한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내 친구들 중에는 이미 주님 곁으로 간 이들도 몇 있지만,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친구들은 아직 그렇지 않고, 또 그러기엔 아직 너무 어리다.

아마도 좀 더 시간이 흘러, 우리가 탄생보다 죽음에 가까워지는 시기가 오게 된다면. 그 땐 좀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겠다.

 

 

#6.

죽음을 바라보는 시간선에 서게 될 때, 나의 다음 세대들은 과연 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어떠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빌이 세상을 떠난 후,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내가 세상을 읽고자 하는 의지는, 이 유한성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을 향해 뛰어가는 건 확실히 일견 무모할 수 있으나. 그럼에도 나는 소명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7.

빌이 하나님 품에서 편히 쉬길 기도하며, 그리고 그의 유족들이 그가 없는 시간을 잘 받아들이길 기원하며.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데살로니가전서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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