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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들

우리가 집을 벗어나야 하는 이유, 그리고 카페

by BLUESSY 2022. 11. 13.

홈 오피스라는 개념이 부쩍 유행을 타기 시작한 것은 팬데믹 이후부터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앞다투어 얼마나 일하기 좋은 환경을 집에 만드는지에 전념했고, 그 결고 이 '홈 오피스' 의 컨셉은 상당 부분 잘 자리잡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나 또한 여러가지 일을 새로 시작하면서 집에서 게이밍 머신으로 쓰던 컴퓨터를 놔두고 다른 오피스 셋업을 하나 더 만들었다. 엄청나게 큰 중고 모니터를 한 대 장만하고, 오로지 일만을 하기 위한 큰 책상을 마찬가지로 중고로 하나 구매했다. 새로이 비즈니스를 하나 시작했고, 이래저래 집에서 일하게 될 일이 많아질 것을 대비해서 이렇게 만들어둔 것인데,

 

미팅을 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실제로 글을 쓰거나 일을 하는 경우가 정말 드물었다.

왜인지 알 수 없었다. 본래 계획은 눈뜨자마자 바로 일을 시작하는 거였고, 퇴근해서도 자연스럽게 글을 쓰고 작업을 하는 것이었는데, 이게 도저히 안 되는 상황이었다. 생각했던 것의 30~40% 정도의 효율만 겨우겨우 나오는 정도였다고 하겠다. 

 

그러다가 cafe들이 dine-in을 다시 오픈하기 시작했을 무렵- 아마도 2021년의 여름즈음이었을 것이다. 그 때, 자주 가던 카페 오픈소식을 듣고 정말 딱 랩탑과 노트만 챙겨서 나갔었다. 예전부터 마시던 커피를 한 잔 시키고 창가쪽 자리에 앉아서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 날, 글을 일곱 편을 썼다.

너무나도 신기한 경험이었고,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집에서는 사업 관련해서가 아니면 일주일에 한 편 쓰는것도 너무 어려웠는데, 이 날은 정말 앉은 자리에서 머리가 맘대로 돌아갔고, 끊임없이 글감과 내용이 떠올라 넘쳐 흘렀다. 이를 겨우겨우 옮겨적는 데에 급급했고, 정신을 차리고 나니 다섯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배고픈것도 모르고 미친듯이 두들겨댄 것이다. 한 시간 남짓 들여 퇴고를 마치고, 집에 들어와 누워서 되짚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심지어 학교 오피스에 가더라도 집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생산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이 날의 경험이 굉장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다음 날도 카페에 가 보았다. 전날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글이 잘 써졌고, 이번에는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이내 조금씩 생산성이 떨어져갔지만, 여전히 오피스나 집보다는 압도적으로 높은 퍼포먼스를 보이는 장소였다. 

 

이는 종종 다른 카페에 가게 되었을 때에 더 극적인 차이를 보여줬다. 집 앞, 학교 앞, 다운타운, 노스게이트 근처, 여기저기 다 돌아다니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서 한 가지 얻은 가설은, 새로운 공간에 갔을 때 뇌의 활성도가 달라지지 않을까 라는 것. 나는 뇌에는 자극이 필요하며, 그렇지 않으면 퇴화한다고 본다. 이는 오감을 통해서 오며, 이렇기 때문에 여러 가지 종류의 자극에 노출되는 것이 중요하다. 노벨상 수상자들은 과학 이외에도 반드시 하나 이상의 예술적 activity를 수준급으로 잘 했고, 즐겼다. 이로부터 오는 뇌의 다양한 자극이 그들로 하여금 때로는 문제 해결능력, 그리고 혹은 아이디어, 상상력 등을 만들어나가는 데에 도움을 많이 줬다고 본다. 

 

사람은 생각하는 만큼 뇌를 쓸 수 있고, 뇌를 쓰는 만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다. 반면 뇌를 쓰지 않는다면 퇴화하고, 현상유지는 커녕 전반적인 퇴보를 보인다. 방구석 폐인이 ""대체로"" backward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자극은 같은 환경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으며, 컴퓨터 등 전자매체를 통한 자극은 대체로 말초적인 것을 좇아가는 경향이 강하다. 게임은 말초적인 자극이기 때문에 더더욱이 상황을 악화시킨다.

 

아버지께서 언젠가 하셨던 말씀이 있다. 러닝머신을 뛰는 것과 실제로 밖에서 뛰는 것은 다르다고. 그리고 그 이유는 내 주변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황에 기인한다고. 그 당시에는 그것이 실제로 '운동'으로서의 측면만을 내가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말의 숨은 속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알겠다. 걷기 운동은 밖에서 하게 되면, 단순히 신체 활동이 아니라 뇌 운동을 겸하게 된다.

 

이제 조금씩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세상을 구성하는 원리와 이치, 그리고 자극과 반응의 상관관계. 세상은 생각보다 복잡해 보이고, 실제로도 그렇다. 그러나 그 원리를 깨닫게 되면 단순해지기 시작하고, 온갖 길과 진리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아직은 세상이 복잡해 보인다. 그러나 조금씩 그 원리에 접근해가는 중으로 보인다. 결국 모든 것은 뇌에 달려있으며, 이 뇌를 어떻게 쓰느냐, 얼마까지 쓸 수 있느냐, 그리고 어떻게 자극해내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아웃풋이 나온다.

 

세상의 비밀을 보는 법, 그 입구에 나이 35가 되어서야 다다르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오늘의 나는 가장 젊은 나이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고 이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한다.

 

즐거운 경험이다. 이 경험을 종종 여기에 기록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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