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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들

인생을 바꿀 지도 모르는 한 마디의 힘

by BLUESSY 2022. 12. 1.

이번 학기는 Microfluidics 클래스 하나를 맡아서 grader로 티칭을 했다. 이 분야의 나름의 파이오니어라 불리는 Dr. Albert Folch의 클래스로, 졸업하기 전에 한 번은 해보고 싶었던 클래스였는데, 생각보다 상당히 재미있어서 놀람 반 즐거움 반으로 티칭을 했던 것 같다. 물론, 약간의 짜증스러움도 섞일 수 밖에 없었음은 당연하다.

 

어쨌거나, 유독 눈을 끄는 한 학부생이 있었다. (이제는) 좋은 의미로 말이다.

 

첫인상은 사실 썩 좋지 않았지만--전형적인 거들먹거리는 재미 한인 교포의 느낌이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아마 아실 분들은 아실 거다--시간이 지나고 이 친구와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다 보니 굉장히 의외였다. 말투나 태도는 정말로 거만하고 교만한....도 아닌데, 이게 뭐라고 해야 되지, 아무튼 좀 잘난 체 하는 느낌의 교포였는데, 이야기를 직접 나눠보니 아니었다. 굉장히 예의바르고 배려가 깊은 친구였다. 이게 정말 신기했다. 남자애들이 이러기가 정말 쉽지 않은데.

 

나름 굉장히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나는 일반적으로 사람의 첫 인상을 잘 보는 편이고, 그 느낌을 잘 읽어내는 편인데, 이 친구는 그 결과를 온전히 뒤집어버리는 경험을 내게 선사한다. 오랜만에 틀린 나의 감은 약간의 부끄러움과 함께 내 인간 데이터베이스의 '새로움' 섹션에 자리하게 된다.

 

수업이 종강하게 되고, 때마침 그 친구가 마지막까지 남아서 디바이스 테스트를 했었어서, 다 끝나고 난 뒤 잠시 이야기를 했다.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었기 때문에-

 

"Man, I can see a tons of potential in you. I am 100% sure you'll make it. Just keep going and never give up. I truly believe you can be a big person for your career, whatever it is."

 

그렇게 약간의 짧은 챗이 오고가다가, 갑자기 이 친구가 눈빛이 변하더니 고개를 숙이면서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

 

라고, 한국어로 이야기를 했다.

 

적게 살지 않았기 때문에, 진심과 가짜를 구분할 줄 안다. 이건 진짜였다. 오랜만에 학부생에게서 듣는 진짜 감사.

 

4살 때 미국에 왔다고 한다. 그 외의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시애틀 근방- 적어도 워싱턴 주에서 모든 유년시절을 보내고, 이곳 UW Bioengineering에 입학했으며, 이제 곧 졸업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졸업 후에는 1년짜리 master program을 할 것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의 눈과 그의 태도에서 정말 큰 가능성을 보았다. 기분 좋은 거만함이었다. 

 

컨설팅 비즈니스를 오래 하다 보니, 사람 보는 눈이 생긴다. 첫인상은 틀렸지만, 그 태도에서 나오는 바이브는 진짜다. 더불어, 이 이야기를 굳이 해주고 싶었던 이유는, 사람은 누군가의 인정이 필요하다. 스스로에게 자존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론 때론 부족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인 교포 입장에서는 미국에서 경쟁하고 성장하며, 때론 상처도 입고, 또 때론 불합리에 맞서야만 하는 힘든 상황이 있게 된다. 이는 내가 많은 교포 친구들을 사귀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이 친구가 어떤 과거를 지녔고, 어떤 배경에서 성장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내 말 한 마디가 어떤 형식으로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나는 백번이고 천번이고, 그런 가능성을 지닌, 그리고 좋은 바이브를 지닌 친구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이것이 내가 늘 생각해왔던,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일이고. 내가 가진 재능을 남을 돕는 데 쓰는 일이다..... 는 아니고, 솔직히 말하자면 선한 영향력에는 관심이 없지만, 이 미국 땅에 있는 재능 있는 한국인들을 더 잘 되도록,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주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박사로서의 나, 인간으로서의 나, 남자로서의 나, 그리고 멘토로서의 나. 모두 다 누군가의 포텐셜을 일깨워주는 데 힘을 쏟는 자아를 가지고 싶다. 강한 한국을 만들기 위해서.

 

좋은 기억이었다. 기록하고자 여기에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