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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들

2023년의 생일은

by BLUESSY 2023. 8. 15.

Zoka Coffee @ Seattle, Photo by KH Kim, IPhone 11 Pro Max

 

댈러스 다녀와서 밀린 일을 하고 있던 중, 갑자기 한밤중에 깨달은 건 '오늘이 내 생일이군' 이었다.

 

오피스 정리를 새로 하고, 이것저것 벌려놓은 일들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는 사이에 다가온 생일인데, 때마침 새로운 러닝화를 샀기 때문에 그걸로 대충 셀프 생일선물이라고 치고.

 

미국 오고 나서는 별로 생일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편이다. 기대도 실망도 그 무엇도 필요하지 않은 것은, 어차피 누군가의 축하를 받는다고 해서 내 삶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라는 다소 허무주의적인 생각 때문이다. 아니, 이었다. 그리고 이 일시적이지만 잔잔한 기쁨은 아마 매년 경험하는 것이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내년에는 없을 수도, 아니 내후년도. 그건 아무도 모르는 것.

 

시작은 12일부터였다. 이미 한국은 13일이었기 때문에 서너명 정도가 메시지로 연락을 해 왔다.

이 때까지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미국 시간으로 13일이 되고 나자 약간의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12일, 그러니까 토요일 저녁에 오피스에 갔었다. 컨설팅도 한 건 있었고, 그보다 너무 오래 집에 머무르면 기가 빨리기 때문에. 13일 저녁에 오랜 친구를 오피스에 초대해야 하기 때문에 자리를 옮기면서 늘어놓은 지저분한 것들을 어쨌거나 치우긴 치웠어야 했다. 그러다 잠이 들었다. 눈을 떴더니 새벽 5시였고, 다시 일어나 밀린 일을 하던 중에. 메시지들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의외로 내 컨설팅 고객들이 많이들 연락을 해 왔고- 아마 그들도 이제 미국에 정착해가고 있으니, 나와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덕도 있을 것이다 - 그리고 오랜 친구들. 친한 형님들 동생들 누나들. 응원단 선후배들.

 

흥미로운 감정이었다. 축하가 하나 둘 쌓이다가 수십개가 넘어갈 때 즈음에는 약간의 부담까지 느꼈었다. 다만 또 한 가지의 발전 아닌 발전이라 함은, 이제 내가 어떤 형태로든 답변하는 것에 편안하다는 것. 예전에는 생일 축하 메시지가 오면 나도 굉장히 정성을 쏟아 답장하곤 했는데, 그것이 쏟는 에너지에 비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는 짧은 감사 답장만 하게 된다. 어쨌거나 수십개의 답장을 하는 건 아무래도 쉽지 않다. 간혹 자신의 사연을 담아 연락하는 친구들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반응을 해야 하고. 그래도 즐거울 수 있는 것은, 내가 정말로 축하받고 싶었던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았다는 것. 그리고 시간이 좀 흘러 소원해졌던 지인들과도 reconnect 되는 좋은 경험이었다.

 

이너서클이 좁은 탓에, 그리고 인간관계에 별로 연연하지 않는 탓에 내 식대로 인간관계를 정의하고 정리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 태도가 크게 바뀌진 않을 것이다. 이는 30년 가까이 걸친 인간에 대한 관찰로부터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나에게 최적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속에서도 내가 가졌던 따뜻한 마음들이 간혹 이런 식으로 돌아오는 것이, 특별히 이번년도에는 더 기뻤다. 이유는 아직 잘 모르겠으니 좀 더 생각해봐야 알겠다.

 

나름의 행복했던 날, 2023년 8월 13일을 기억하고자.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