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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들

지혜를 구하며

by BLUESSY 2023. 10. 4.

#1.

복잡한 마음이 들 때는 보통 하나의 사건이 트리거가 되어, 그것이 여러 가지의 연쇄작용을 거쳐, 한 바퀴 돌아 나에게 온다. 내 마음속의 여러 가지 작용과 충돌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역설적이게도 어느 순간 편안해짐을 느낀다. 만일 나의 능력 밖의 일이라면 고통받는 것이 무의미하고, 내 능력 안의 일이라면 나는 반드시 방법을 찾기 때문이다.

 

올해의 키워드는 불천노 불이과(不遷怒 不貳過) 이다. 화를 옮기지 않고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 논어를 처음 읽었던 것이 대학교 1학년 때 교양수업 과제였는데, 그로부터 15년여가 지난 지금, 조금 더 일찍 논어를 읽었더라면 참 좋았겠다 하는 마음이 든다. 정제되지 않은 분노는 모든 일을 그르치고, 나와 상대를 동시에 상처입힐 수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에. 요즘은 좀 더 내 분노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데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이것은 흥미로운 경험이다. 분노가 향하는 대상은 보통 내가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홈리스가 길거리에서 내게 F-word를 남발한다고 해서 화를 내지는 않는다. 기대가 없으니.

 

최근에 구매한 Bible Meditation Journal / Photo by KH Kim, IPhone 11 Pro Max

#2.

한동안 신앙이 많이 상해있었다. 신기한 것은, 신앙이 떨어지면 멘탈 내구력도 떨어진다. 무엇이 먼저인지는 잘 모르겠다만, 그럴 때 마다 하나님께서 나를 채찍질하시는 것에 감사하며, 다시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최근에 마샬즈에 가서 daily 성경구절 노트를 샀는데, 이게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된다. 좋은 구절들이 선별되어 있기 때문인지, 그리고 당연히 어느 정도는 기분 탓이겠지만 그날그날 나에게 필요한 말씀들로 해석하기에 좋다. 

 

오늘의 구절은 아래와 같다:

Trust in the Lord with all of your heart, and lean not on your own understanding; in all your ways acknowledge him, and he shall direct thy paths. (Proverbs 3:5-6)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언 3:5-6 KRV)

 

스스로의 판단만으로 내가 지향하는 곳에 다다를 수 없음을 안다.

나는 현명하지만 충분치 못하고, 지혜로우나 어리석다. 하여 지혜를 구한다. 지혜를 달라고 기도한다. 나의 오만함이 아니라, 나의 스스로의 영특함이 아니라, 정말 내가 원하는 이상에 다다를 수 있기 위해서- 더 큰 시각에서의 지혜를 구한다. 졸업을 준비하면서 내 한계를 날마다 마주하고 있으니, 이 한계를 깨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가 가진 그릇보다 좀 더 큰 지혜, 그리고 힘이 필요하다. 현명하지 못한 사소한 판단들을 뒤로 하고, 이를 뛰어넘어 더 큰 영역으로 가길 원한다.

 

30대에 처음으로 겪는 열감이다. 마음속 어딘가에 뜨거운 갈증이 있는데, 이것을 풀어내려면 반드시 현명한 자가 되어야 한다. 기회도, 사람도, 재화도 준비된 현명한 자에게 오며, 그 자들이 그것을 잡을 때 비로소 유의미한 시너지가 난다. 다만 나의 욕심보다는 하나님의 큰 뜻을 위해, 내가 가진 사명이자 소명을 이루기 위해,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할아버지께서 꾸셨던 꿈을 위해서.

 

 

#3. 

아침마다, 그간 살아오면서 했던 여러 선택들을 정리해보고 있다. 현명했던 판단도, 극도로 어리석었던 사건도 많다. 미래를 위해서 했던 선택들은 대부분이 옳았다 믿지만, 그 과정에서 희생된 것들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어쩌면, 내가 좀 더 현명했더라면 둘 다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미련 비슷한 감정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미련으로부터 자유롭기란 정말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간이 지나서 희석된 미련이 아니라, 온전히 내 힘으로 극복해낸 미련은 생각보다 적었다. 이 미련들이 사소해 보여도, 내 안에 쌓이고 쌓이다보면 결국 독이 되고 짐이 된다. 시간으로 희석되지 않는 것들은 모두 다 직접 들어내어 버려야 한다. 그 아릿함을 마주할 때 비로소 내 미련과 내 두려움이 무엇인지 마주하게 되고, 내가 나를 좀 더 알아갈 수 있다.

 

 

#4. 

바람에 실려간 꽃잎은 다시는 나에게 돌아오지 않는다. 어리석은 자는 날아가는 꽃잎을 보고도 그것이 꽃인 줄 알지 못한다. 그리고 마침내 꽃들이 다 진 후에야 늦었음을 깨닫는다.

지혜로운 자는 꽃잎이 날아가길 기다리지 않고 날아가는 것들을 잡아보는 것 부터 시작하고, 또 한편으로는 나무를 타고 올라가 꽃을 취한다.

 

 

#5.

큰 사람이란 큰 포용력을 뜻한다. 나와 다른 사람을 어디까지 받아들이고 품을 수 있는가. 혹은 그들을 어떤 형태로 내 편으로 만들 것인가. 이미 우리는 제법 긴 시간을 서로 다른 세상과 배경에서 살아왔고, 그런 여러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좋은 조화를 이루어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것을 조율해내는 것이 능력이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이 아마도 이런 느낌일 듯 싶은데, 나는 어떤 타입의 어떤 느낌의 지휘자가 되어야 하는가.

 

 

 

삶의 평정심을 뒤흔드는 여러 요소들이 있다. 그간 스스로 평정심이 좋다 여겨왔지만 요즘 꼴을 보아하니 딱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기도하고, 현명함을 구하며 돌아볼 때다. 지치지만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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