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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들

왜 끊임없이 연습해야 하는가

by BLUESSY 2024. 6. 18.

 

1.

지난 겨울, Candidacy Exam (General Exam, 한국에서 프로포절이라고 불리는 절차)을 통과했다.

내 경험상, 한국에서 박사과정 하는 친구들은 이 candidacy에 대해 그 어떤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일단 카이스트에서 PhD candidate와 PhD student를 구분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따라서 이 의미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없다. 사실상 교수가 내쫓지 않는 다음에야 한국에서 프로포절이 fail나거나 재시험을 보는 일은 절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주변엔, 여기서 떨어져서 프로그램이 terminate되고 쫓겨난 사람이 둘이나 있었다. 한 명은 심지어 내가 시험을 치르기 한 쿼터 전에 말이다. 그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였지만, 그래도 설마 했었다. 

3주동안 아침 6시에 잠들고 오후 1시에 일어나는 생활을 반복하면서 (일단 writing을 하려면 나는 무조건 밤이어야 한다) 결국 무사히 잘 치뤘고, 컨디션 없이 clean pass를 받을 수 있었다. 컨디셔널 패스를 받게 되면 굉장히 골치아파지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다만, 클로즈세션 피드백에서 나는 생각보다 큰 충격을 받았다.

그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이 블로그에 올리는 글들은 그냥 머리를 비워내는 수준의 글인지라 잘 다듬지도 않고 써지는대로 뱉어내듯이 씌여 있어서, 퀄리티가 엉망진창이지만. 목적을 가지고 각 잡고 쓰는 글은 어지간해선 남에게 뒤쳐져본 적이 별로 없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은, 미묘한 표현의 차이가 가져다주는 아슬아슬한 감정의 줄타기를 좋아하는 탓이다.

 

영어도 그러하다. 영어로 말하는 것이 자유로워진 이후로부터는 아주 자연스럽게도 글쓰기로 관심이 가게 된다.

내 두 지도교수의 글을 뛰어넘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게 되었는데, 특히 박사 지도교수는 필력도 실력도 이 분야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는 사람이라- 그의 글을 볼 때마다 새삼스레 감탄하게 된다.

 

 

2.

일주일에 한두편씩 꾸준히 써왔던지라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더불어, 나는 한국의 대학원이 논문쓰기 교육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고, 다른 부분보다 특별히 디스커션을 쓰는 것에 대해 많이들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정확히는 알게 되었다. 해서 이 디스커션 섹션에 대해서 특별히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또 많이 읽고 쓰는 연습을 했었는데, 정작 클로즈 세션에서 지적받은 곳이 바로 여기였다. 

 

놀라웠다. 하고많은 곳 중에 내가 제일 신경을 많이 쓰고 공들인 곳이 정작 가장 큰 문제라니.

다만 한편으론 그 교수가 이야기하는 지점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만큼 내가 많이 고민해보고, 많이 시도해본 덕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답답하게 생각하는 부분들에 대해서 정확히 짚어 주었고, 방법을 가르쳐주진 않지만 적어도 무엇이 오답인지는 알려주었다.

모두 잘 알겠지만 삶에는 정답이 없다. 그러나 오답은 존재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내가 바라보는 삶이란 오답을 잘 피해서 내 답을 더 세련되게 잘 다듬어가는 과정이라 본다.

 

 

3.

연습은 언제나 필요하다. 내가, 그리고 당신이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계속 하고 싶다면 반드시 지속적인 연습이 필요하다.

첫째로, 그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의 수준은 계속 올라가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그 무언가를 당신이 꾸준히 해낸다면, 당신이 그것을 통해 볼 수 있는 세상 또한 점점 더 넓어지기 때문이다.

 

4. 

내가 무언가를 '잘 한다' 는 느낌이 들면, 나는 그것을 세상에 내놓아 테스트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생각, 어떤 의도를 가졌는지가 중요할 때가 있다. 바로 나 혼자만의 세상에 살려고 할 때다. 그런데 그것이 이 세상에서 먹히는, 통하는, 그리고 인정받는 수준인가에 대해서는 반드시 대중의 평가가 필요하다. '나는 내가 추구하는 스타일대로 살거야' 의 가장 최악의 예시가 예전에 존재했었다.

 

디젤매니아라는 사이트에 심심찮게 올라오던 '옷 핏' 의 이야기이다. 특히 수트나 자켓 핏에 대해서.

image from GQ

 

자, 이걸 보고 이상함을 잘 못 느낀다면 당신도 그 부류일 가능성이 높다.

 

Image from Instagram @menssuitteam

 

왼쪽의 too tight에 해당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았다. 저건 옷을 '슬림하게' 입는 것이 아니라 작게 잘못입은 것이다. 그걸 누군가 '끼어보여요' 라고 지적하면 '저는 제 스타일대로 입는 것을 좋아해서요' 라는, 작성자의 판에 박힌 반박이 나왔다.

 

남이 보기에 잘못되어 보인다면, 특히 그걸로 남을 설득하려 한다면 그 '남' 의 시선과 시각을 이해해야 한다. 이것은 '세상이 원하는 대로 살지 않겠다' 와는 아예 다른 이야기다. 지능이 낮은 멍청이들이 간혹 이런 것을 대중과 다른 삶, 스타일이라고 이해하곤 하는데, 그것은 혼자서 오랜 시간 수련을 통해 증명해야 하는 신념 같은 것들에 대한 것이고, 그것마저도 대중과 완전히 다른 방향이라면, 당신은 대중과 싸우는 것을 함부로 택해선 안 된다. 

 

 

#5.

좋은 예시가 하나 더 있지 않는가. 바로 문신에 대한 이야기.

아주 유명한 문구가 있다. '문신충은 평생 자신이 '충' 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며 살아야 한다' 고. 

대중의 일반적 편견이라는 것은 그냥 당신이 혼자서 부정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 편견이 잘못된 게 되지도 않는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간다. 이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했다면, 당신은 잘못 살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예외에 의해 돌아가지 않는다. 세상은 빼어남과 훌륭함이라는 1%에 의해 설계되고, 이끌어지며, 그 나머지 99%는 '일반적인, 평범한' 이라는 것에 의해 돌아간다. 

 

일론 머스크가 문신을 했다고 하면 그 누구도 그를 문제삼지 않을 것이다. 빌게이츠도 마찬가지다. 왜냐, 이미 그들은 증명했으니까.

당신이 문신을 했다면, 증명하기 전까진 세상의 시선에 대해 불평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세상이 이미 그러하다는 것을 모르고 문신을 했을 리 없으며, 세상이 틀렸다고 불평한다 해서 당신에게 쏟아지는 편견이 없어지지 않는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라.

 

당신이 어떤 특이함, 혹은 재능, 혹은 능력을 내세우려면, 반드시 세상에 내놓아 시험하고, 수정하고, 또 실험하는 것을 반복함으로서 연습을 통해 그 힘을 키워가야 한다.

 

이것은 세상 모든 만물에 통하는 이치이다. 당신의 삶은 당신의 연습을 통해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