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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들

고난이 내게 유익이라

by BLUESSY 2024. 5. 11.

https://www.youtube.com/watch?v=DZwIrC8TtfA

 

 

Youtube Clip: Tough times create strong men, Aaron Mckie

 

My grandfather walked 10 miles to work everyday

My father walked 5

I'm driving a Cadillac

My son is in a Mercedez

My grandson will be in a Ferrari

But my great-grandson will be walking again.

 

Tough times create strong men

Strong men create easy times

Easy time create weak men

Weak men create tough times.

 

Many will not understand, but you have to raise warriors.

 

#1.

오래된 기억이다. 언제 이 영상을 보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그럼에도 내 마음에 큰 파문을 남긴 클립.

고난을 원망하던 시기를 지나, 고난을 감사함에 이르기까지 있었던 많은 순간들이, 이 영상이 끝나고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그런 시간들에 정말로 감사하고, 또 한편으론 내가 이런 고난들을 헤쳐나갈 만큼 강한 의지를 가지게 해 준 나의 핏줄과 부모님의 교육에 감사한다. They literally raised warriors' spirit in me.

 

어마어마한 부를 지닌 집안에서 태어나는 것은 축복받은 일이다. 또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는 것도 그렇다. 

다만 어정쩡한 수준의 집안에서 태어나는 것이 정말 애매한 일이다. 이것이 여성인 경우는 사실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있으나, 남성의 경우는 치명적인 문제가 된다. 

 

첫째로는 컴포트 존에서 딱 먹고 살 만큼만의 돈을 벌며 위를 쳐다보지 않게 될 확률이 높고,

둘째로는 돈을 벌어서 고귀하게 (혹은 제대로) 쓰는 법을 교육받지 못했기에, 과소비를 하게 되어 결국 파멸에 이르기가 쉽다.

그리고 셋째로는 남성이 정글에서 생존하기에 필요한 전투적인 마인드셋, 그리고 공격적인 남성성을 길러낼 수 없기 때문이다.

 

공격적인 남성성과 폭력은 동치가 아니다. 공격적인 남성성은 남성의 책임감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내 가정 내 아내 내 자녀를 지키고 서포트하겠다는 굳은 의지에서 나오는 생존과 투쟁의 본능이다.

 

 

#2.

시대가 바뀌어 우리는 더 이상 공룡을 잡지 않아도 되고, 원시 부족들이 그러했던 것 처럼 도끼와 칼을 들고 서로를 죽이려 뛰어다니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여전히, 투쟁과 경쟁은 이 사회에 존재한다. 그것이 수천년동안 이어져 내려온 남성성의 본질이다. 

 

말단 부족원의 아들로 태어난 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생존 자체와 맞딱드리게 된다. 내가 가장 먼저 죽게 될 가능성이 높기에 필사적으로 살아남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물론 그렇지 못하면 죽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이야기하는 건 그렇게 죽어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거기서 살아남아 또 다른 부족장이 되는 자의 이야기이다. 

 

Tough times create strong men

 

부족장의 아들로 태어난 자는 안전과 재물을 약속받는다. 그것이 영원하지 않지만, 적어도 부족원들이 다 죽어나가기 전까진 가장 안전한 위치에 자리한다.

 

Strong men creates easy times

 

그리고 그렇게 새 부족장이 아들을 낳으면, 정말 큰 위기 상황이 맞딱드리면 그 새 아들은 아주 높은 확률로 무엇도 못 하고 죽게 된다. 그렇기에 '나의 혈통' 에 대한 각별한 신경과 관심, 그리고 교육이 중요하다. 

 

Easy times create weak men, and weak men create tough times

 

그렇게, 이 강함과 약함의 무한한 순환고리는 여전히 사회에 존재한다. 강함이 만들어내는 easy time을 대대손손 물려주기 위해선 반드시 유약함을 벗어던질 수 있는 양육철학과 가정교육이 필요하다.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그러한 의미이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28

 

 

 

#3.

자손을 낳는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내가 아끼는 이와 밤새도록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자신의 대에서 번영을 포기하고, 본인의 열락만을 좇아 산다면. 그것은 성경적이지 않다. 

더불어 오늘날 이 땅에 존재하는 '나' 를 만들어내기까지의, 내 가문의 피를 타고 내려오는 모든 유전자들. 그리고 그 유전자를 내게 전하기 위해 수없이 노력하고, 역경과 싸워 이기고, 때론 지기도 했지만 끝끝내 살아남아 나에게 이르는 선조들의 열망이자 꿈을 외면하는 것이다.

 

나는 분명히 태어나길 선택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나와서 삶을 영위해간다는 것은 크나큰 기쁨이자 즐거움, 그리고 축복이다. 누군가에겐 저주일테고, 누군가에겐 지옥일 테다. 그러나 그 또한, 환경과 부모를 택할 수 없다손 치더라도 결과론적으로 마지막의 마지막에 있는 책임은 언제나 스스로에게 있다. 스스로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도, 행복하게 만드는 것도 결국은 당신의 멘탈 깊숙히 있는 욕망과, 또 성취하고자 하는 열망이다. 애당초 이 세상은 평등하지도, 공평하지도 않게 설계되어 있다. 삶은 원래 x같고 괴로운 게 기본이다. 그런데 이를 원망하고 세상을 탓하는 것은 결국 삶을 송두리째 낭비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삶을 바꾸고, 누군가는 삶을 나락보다 더 깊은 심연에 떨어뜨린다.

 

모든 것의 마지막은, 너의 선택이다.

 

 

 

#4.

다시, 본 주제로 돌아와서.

미국에 나와서 더 넓은 스펙트럼의 사람들, 더 높은 퀄리티의 친구들을 만나고. 또 내가 가르치는 학부생들의 배경과 그들의 애티튜드에 대해 생각할 일이 굉장히 많다. 그리고 거기서 내가 깨닫게 되는 건, 결국 20대부터 차이가 벌어지는 이유에 '가정교육' 이 어마어마한 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이 가정교육에는 단순히 집안의 분위기를 넘어서서 부모가 어떤 퀄리티를 가진 인간이냐, 그리고 그 부모의 선조들은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가. 그래서 이 자녀가 가진 스스로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등, 한국에서 흔히 이야기했었던 '나는 누구인가' 따위의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이 누군지를 비교적 명확하게 알고 있다. 

 

내가 목도한 몇몇 뛰어난 학부생들은 대부분이 의사나 변호사의 아들딸이었다. 간혹 큰 사업가의 자녀들이기도 했고 말이다. 이것은 어쩔 수 없다고 본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위선적인데, 직업으로부터 삶의 많은 부분이 바뀌기 때문이다. 따라서 직업에는 반드시 귀천이 있고, 상하가 있다. 의사나 변호사를 생각하면 다소 경직된 분위기를 생각하게 마련인데, 그 안에서 그들이 가지지 못했던 자유로움이라는 가치가 부여된 모습이었다. 이 학부생들은 스마트하고, 날카로우며, 지적이고, 또 쾌활하고 사교적이었으며, 나와 대화하는 지식 수준조차도 이미 학부생 수준이 아니었다. 그들은 공학을 전공했음에도 예술, 문화, 사회학, 철학, 정치에 이미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스스로가 나아길 길과 비전에 대해 이미 오래간 진지하게 고민한 이들이었다.

 

나는 이를 현대의 인류의 '진화' 라고 생각한다. 부족한 점을 끊임없이 보완하여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 때론 재물이기도, 지능이기도, 성격이기도, 또는 라이프스타일이기도 하다. 그것이 꾸준히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되어, 그 가문의 문화를 일구어가는 것.

 

 

#5.

다소 덧없는 생각이지만, 내가 미국에서 자랐더라면 어떤 장단이 있었을까, 지금의 나와는 어떤 다른 모습일까가 문득, 궁금해졌다. 물론 마냥 좋은 점만 있었으리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을 아마도, 조금은 더 향상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

 

 

#6.

내가 가졌던 고뇌들, 고민들, 그리고 이를 통해 얻은 답들. 거기서 찾아낸 나의 가치와, 내 세상에 대한 이해들.

이런 모든 것들을 내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다. 하여 그들이 번성하고, 그들의 삶을 일구어 나가면서 세상을 얼마나 바꾸어낼 수 있는지를,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그리고 내가 세상을 뜨고 하나님 곁에 올라가있을 때에도 지켜보고 싶다.

 

 

#7.

어떻게 해야 easy time creates weak men을 막을 수 있는가.

대학교 1학년 때 잠시 몸담았던 교회의 청년부에서, '강해지게 해 달라' 는 것을 기도제목으로 세우고 오래간 기도했던 나를, 대부분의 동년배들은 이상하게 생각했었다고 말한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도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다소 특이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강하게 하소서' 는 거진 10년의 기도제목이었다.

 

이제는 안다. 확연히, 나는 강해졌다. 절대적인 수치로 따질 수는 없겠으나, 내가 원하는 굳건함과 강인함을 얻었다. 동시에 새롭게 주어진 기도제목이 나의 미래 자녀에 대한 양육철학의 바로서기인데, 내가 가진 여러 가지 장점들이 도대체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에 대해 오래간 고민해왔다. 이를 좀 더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 아버지, 어머니와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주변의 친구들이 어떻게 성장했는지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의견을 나누곤 한다. 인간의 현대적 진화의 열쇠는 여기에 있고, 그 진화의 비밀을 풀기 위해선- 고민하기에 있어 이른 시기는 없다. 이를수록 좋다.

 

 

#8.

모든 것을 다 준비한 채로 새로운 이벤트를 맞이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미리 고민하고 그 답을 찾으려 했던 흔적은 삶에 반드시 남게 되어있다. 고뇌는 인간을 성장시키고, 고난은 마음을 담대히 만든다. 내가 20대, 그리고 30대를 통째로 붙잡고 살았던 말씀으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시편 11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