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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들

죽음에 대하여 #1

by BLUESSY 2023. 10. 5.

<2023년 10월 4일의 노트로부터>

 

#1. 

한국을 오래간 떠나있으면 자연스레 정리되는 인연들이 있다. 물론 그들 중 일부는 내가 한국에 돌아간다면 여전히 반갑게 맞아주겠지만, 막 내가 미국으로 넘어왔을 때 만큼의 커넥션은 앞으로도 유지되기 힘들 것이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오늘 아침, 지인의 부고를 맞이했다.

 

이상한 시기이다. 조문 연락을 한 게 여름에만 벌써 두 건이었는데, 한 건은 지인의 동생, 또 한 건은 지인의 할아버님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본인상이다.

 

머리가 멍해졌다. 굉장히 가깝거나 친했던 사람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갑작스레 떠나갔다는 것이 잘 다가오지 않는다. 본인상은 그렇다. 이 사람 전에 두 번의 본인상을 접했었는데, 둘 다 20대 초반에 겪었던 일이라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다만 그 당시에도 믿기지 않는다.... 는 말을 친구들과 반복했던 것 같다. 이번에 본인상을 당한 지인은 내 모든 mutual friend가 다 한국에 있기 때문에 더더욱이 어떻게 나눌 수도 없다. 엄청나게 가깝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참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Rest in peace, Miss Silver.

 

 

#2.

제법 오래전부터 내 노트에는 죽음에 대한 단상들이 많이 적혀있었다. 이유는 '그럼에도 내가 내일 죽는다면?' 이라는 물음 때문에. 그리고 궁금하기 때문에. 아직 죽어보질 않아서 과연 죽음은 어떤 것인가에 대한 호기심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쌩으로 내 아까운 목숨을 끊을 수는 없으니 그저 열심히 사고하고 유추할 뿐. 죽음이라는 주제에서 뻗어져나오는 여러 영감, 그리고 철학의 역사는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가 바로 죽음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하는 거겠지.

 

조던 피터슨이 언젠가 죽음에 대해 말했던 이야기들--어떤 팟캐스트였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을 돌이켜볼 때, "과연 우리는 죽음 앞에 떳떳한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지금도 우리는 매 순간 죽음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에, 언제 갑자기 들이닥칠 지 모르는 죽음에 대해 늘 생각해야 한다. 죽을 것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

 

아닌가? photo by KH Kim, IPhone 11 pro max

 

 

#3.

죽음이 다가올 때 그를 병상에서 맞이하고 싶지 않다.

 

스쿼시를 거진 한 달 만에 다시 치기 시작했다.

80세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그보다 더 오래 살고 싶긴 하지만) 내가 가장 활발하게 일을 하고, 머리를 쓸 수 있는 시기는 아마도 지금부터 60세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뇌의 활성도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몸이 받쳐줘야 일을 할 수 있다. 미국에 오기 전에는 하도 춤을 추러 다녔으니 가끔 발목 다치는 것 외에는 몸이 정말 과하게 건강했었는데, 박사과정 중에 따로 사업을 시작하면서 앉아있는 시간이 너무 늘어나다 보니.. 몸이 망가지게 된다. 살도 많이 찌고, 근육량은 줄었고. 생전 걱정할 일 없던 부분들까지도 신경을 써야 하는 몸이 되었다.

 

건강을 잃어, 그걸 회복하려고 애쓰는 중에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그건 정말로 억울할 것이다. 해서, 제대로 죽으려면 최소한 몸을 잘 관리해야 한다.

 

 

 

#4.

순간을 충실히 살면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오늘을 사는 사람, 내일을 사는 사람 나름의 충실함이 있겠지만, 그보다 더 작고 세밀한 차원에서 시간을 들여다보게 되면- 이 '순간' 이 작동하는 느낌이 들 때가 가끔 있다. 세상이 멈춘 느낌.

어떻게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이지만, 오늘을 충실히 살자던 과거 어느 시점의 나는 죽음에 대해 잘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때는 리비도가 미친듯이 흘러넘쳐 그만큼의 사고를 할 만한 머리가 아니었지 싶다. 시간이 지나고, 여러 경험이 생기고. 지식이 늘어가면서. 조금씩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그 '순간' 을 느낄 수 있게 되면서부터는 생각이 바뀌었다. 흘러넘치는 잔 같은걸까. 우리가 잔에 물을 따를 때, 빈 잔일 때에는 콸콸 부어도 별 걱정을 하지 않는다. 온전히 빈 잔이니 가장 초기에는 흘러넘침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반 정도가 찼을 무렵부터는 조심스러워진다. 흘러넘쳐 망하는 것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간이라는 개념을 끼워넣는다면 다소 이해가 된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 갑자기 생각난건데, 그래서 사람 그릇 크기가 중요한 것 같다. 16온스짜리 텀블러에 물을 따르면 반이 금방 찬다. 그런데 드럼통에 물을 따르면 반이 차는데 한참 걸리고, 반이 차고 나서도 콸콸 부어도 괜찮다. 무언가를 격렬히 겪어도 멀쩡한 멘탈리티의 비밀은 결국 그릇 차이다. 

 

(약간 개소리같지만 어쨌거나 맘에 드는 비유다. 써놓고 보니 뭔소린지 모르겠으니, 나중에 다시 써먹어야지)

 

해서, 파괴/무질서로 가는 절대속도를 어차피 우리가 조절할 수는 없으니 (어차피 우리가 어떤 속도로 채워지고 있는지 알 수도 없다. 개인차도 심하고..) 그럼 상대속도를 생각하는 수 밖에 없고, 그러려면 결국 시간을 쪼개어 살아가야 한다.

 

 

#5.

나는 죽음이 두렵다.

내가 어떤 목표를 세운 이후로부터는 더 그렇다. 그를 이뤄서, 내 아들딸이 살아갈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 그래서인지 더더욱, 시간이 사그라져가는 것을 몸으로 느낀다.

인간이 무한정 실패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분명 신의 옷자락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한한 삶이기에 더 타오를 수 있는 것일 테고, 이 유한함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의 삶은 죽음으로 완성된다. 다만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우리는 반드시 의미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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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너무 개판이므로

수정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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