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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들

부정적인 감정이 나를 틈탈 때 (Tribute to J)

by BLUESSY 2023. 10. 14.

촛불을 바라보자. Photo by KH Kim, IPhone 11 Pro Max

 

사람이 약해지면 당연하게도 부정적인 감정에 쉽게 휘말리게 된다. 이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경우는 더 안 좋은 사이클로 들어갈 수도 있다. 약해지는 것은 외적인 부분과 내적인 부분이 있는데, 외적인 부분은 주로 나를 둘러싼 중요한 인간관계들로부터의 문제나 상처들이고, 내적인 부분은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부족을 인지하고, 그것이 밖으로 새어나오기 시작했을 때 엄습하는 감정이다.

 

부정적인 감정은 전파력이 강해서, 순식간에 내 정신을 장악해간다. 걱정으로 인한 불면증이 그 좋은 예시이다. 부정적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기 때문에, 의식적으로라도 그 흐름을 끊지 않으면 어려운 상황에 처하기 쉽다. 그래서 가장 좋은 방법은 밖으로 나가 운동을 하는 것이다. 정신이 육신을 지배하게 두지 않는 것. 육신으로 정신을 털어버리는 것이다.

 

살면서 누군가를 진심으로 미워하고 증오했던 적이 없는데, 나이가 들면서 preference가 점점 뚜렷해지니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제대로 된 원망이라는 걸 해보게 된다. 어린 시절에 했던 원망은 그냥 칭얼거림이었다 할 정도로, 누군가를 원망하는 것은 어마어마하게 자기파괴적인 일이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지만, 그럼에도 가끔 억지로 꺼내어 보며 되새길 필요가 있을 정도로 내 삶에 큰 의미를 깨우쳐 준 사건이었다. 그리고 뒤이어 시기와 질투 또한 내 마음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다만 내가 인정하지 않았을 뿐.

 

이 감정은 주로 열등감에서 온다고 본다. 나의 못난 부분을 마주하기 싫어 부정하면서 생기는 고통. 내가 가지지 못한 부분에 대한 분노, 그리고 자괴감이 한데 뒤섞여 나의 마음 한 가운데를 묵직하게 누르는 고통이다. 내가 왜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가, 왜 영향을 받는가. 왜 나는 이렇게 반응하고 있는가. 그 의식의 기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가 더 큰 사람이라면' 의 what if가 존재한다. 이것이 영향을 안 받고 그냥 모른 체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더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이다. 상황이 되었든 사람이 되었든, 영향을 받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할 때, 본인이 그것을 손쉽게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끊임없이 스스로를 들여다보면서 내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가야 한다. 

 

특히, 상황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원망은 기대감 혹은 애정이 있기에 일어나는 현상인데, 그게 아니고 단순히 분노가 일어난다면 그저 상대와 나의 주파수가 맞지 않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전자든 후자든 나를 지켜내는 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즉, 내 마음의 어느 부분이 다쳐있는지, 그리고 닫혀있는지를 잘 돌아봐야 한다.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

잠언 14:30

 

 

원망하던 사람이 있었다. 정확히는 원망인지 뭔지 잘 생각나지도 않을 만큼 부정적인 감정이 너무 크게 뒤섞여 상대를 마음 한 켠에서 원을 품고 비난하던 때, 우연히도 내가 아주 오래 전 썼던 일기가 생각났다.

 

"미움, 시기, 질투, 원망은 결국 나를 망친다."

날짜 미상, 아마도 2019년 11월 경의 일기로부터 발췌.

 

"그것이 때론 동기부여가 되고 나의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으나, 긴 관점으로 볼 때 나의 무의식에 쌓이는 데미지는

절대로 무시할 수 없다"

 

"그렇기에 상대를 사랑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그녀가 가진 아름다움과 좋은 정신을 바라보라. 만일 그런 것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만들어 주면 된다."

 

만들어 주라니. 저 때의 나는 무슨 성인군자 비슷한 거였나보다.

다만 한편으로는, 지금과 저 시절이 다른 것은 내가 많이 소모되어 있고, 팍팍한 탓이라고도 생각해본다. 여유라는건 확연히 마음의 크기이다 (가끔은 지갑의 크기라고들 하는데 그건 아직 없으므로 ㅎ). 마음에 공간이 없으면 너무 많은 것들이 가득차서 누군가의 잘못이나 실수가 발디딜 틈이 없다. 그 실수가 안으로 들어올 만한 공간이 있어야 내가 품어주고 이해할 수 있는 법일진대, 정신적인 부분이 몰려 있다 보면 확실히 쉽게 부정적인 감정에 나를 내어줄 수 있다.

 

학회장 네트워킹을 마치고 그냥 내 오피스로 갈까 하다가, 친구의 오피스로 차를 몰았다.

때마침 한국에서 터진 뉴스때문에 할 얘기도 있었고, 그보다 이 친구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할 일이 며칠 전에 있었는데 아직 하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갑작스런 방문이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그녀는 나를 웃으며 맞아주었다. 이 먼 타국 땅에 몇 안 되는, 내가 언제고 찾아가도 기쁘게 맞아주는 좋은 사람이자 나의 아끼는 벗이다. (사실 이 양반은 잠을 잘 안 자기 때문에 항상 일터에 있다.)

 

그렇게, 그녀와 이야기를 한참을 나누다가 깨닫게 된다.

내 못난 마음이 원망을 불러왔구나 라는 것. 돌이켜보면 나는 남을 비난하기보다는 나를 비난하고 탓하는 데 익숙했던 사람인데, 이게 어느새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가 원망스러울 땐, 그 사람을 잃을 각오를 하면 된다. 없애버리겠다 내 삶에서 지우겠다가 아니라, 그 사람과의 관계를 정리해도 된다는 마음으로 대화에 임해야 한다. 그것만이 나를 자유케 한다.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은 내가 그 위에 밟고 올라 서는 것밖에는 없다. 물질로 채울 수 있는 자유로움은 결국 한계가 있어서, 결국 정신적으로 자유로워지는 것, 즉 마음의 화평을 얻는 상태에 도달해야 한다. 그리고 그를 가능케 하려면, 내가 더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녀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런 부정적인 감정과 싸우고 있었다는 걸, 어제 이야기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원망을 멀리해야 하는 것을, 분노와 시기 질투 미움을 태워 없애야 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기 위해선 상황을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봐야 한다. 내 눈 앞에 벌어진 아수라장에 같이 뛰어들어 난리를 칠 것이 아니라, 몇 발짝 물러서서 일단 상황을 관조한다. 나의 감정, 나의 상황을 이해하고, 아수라장이 굴러가는 패턴을 파악한다면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 이것이 물러섬의 미학이라 하겠다.

 

그녀는 그럼에도, 나를, 우리를 포용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 또한.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본인을 희생해가면서까지도 우리를 포용했던 그녀의 따스함이 못내 마음에 밀려 들어올 때. 나는 오랜만에 내가 왜 이 사람을 이렇게까지 챙기고 좋아하는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누군가를 존경한다는 마음을 품어본지가 언제인지 기억조차도 나지 않는 지금. 나는 어젯밤, 그녀를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었다.

 

나의 오만방자함을 부드럽게 무너뜨려준 당신에게, 이 글을 바친다.